'깐깐한 김대리' 김기문, '영원한 회장'으로 퇴임

입력 2015-02-25 20:45   수정 2015-02-26 04:01

중기 현안 줄줄이 꿰차고 간부들 몰아세웠던 김 회장
풀리지 않는 문제들 해결하자 '뒷담화'하던 직원들도 인정
직원들, 김 회장 환송식서 '8년간의 과정' 동영상 제작해 선사
간부들은 자비 털어 금 명함 선물



[ 김용준 기자 ] 중기중앙회와 함께한 8년
일 때문에 상처받은 직원들
사과할테니 모두 털어달라


2007년 3월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된 김기문 로만손 회장에게 별명이 하나 생겼다. ‘김 대리’였다. 행사가 있으면 메뉴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챙기는 그를 보며 직원들이 냉소적으로 부르던 별명이었다. 어떤 부장은 전채 음식인 ‘카나페’가 뭔지 모른다고 김 회장에게 깨지기도 했다.

직원들의 ‘뒷담화’에 변화가 생긴 첫 번째 계기는 경영전략회의였다. ‘대충 보고나 받고 끝내겠지’라고 생각하며 회의장에 들어간 중기중앙회 간부들은 김 회장이 대부분 현안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김 회장은 간부들을 몰아세웠고, 한 간부는 한마디 대답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소문은 퍼져나갔다. 간부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김 과장쯤은 되네”라며 약간 높여 불렀다.

하지만 이런 평판도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6월 어느 날. 김 회장은 이모 부장을 불렀다. 행사 날짜와 시간을 세 번이나 바꿔 짜증이 난 이 부장에게 그는 “술은 화요와 레몬을 준비해”라고 지시했다. 홍초소주 영귤소주 레몬소주 등을 일일이 지정하는 김 회장에 대해 이 부장은 “김 대리 병이 또 도졌다”고 동료들에게 푸념했다. 김 회장은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시켰다. 머리가 빠지는 직원도 나왔다. 어떤 간부는 눈물이 많아졌다고 하소연했다.

2011년 10월10일. 중앙회 곳곳에서 “김 과장이 한건 했네”라는 말이 들렸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뭐로 꼬신 거야”라고 감탄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가 중소기업DMC타워 건설과 노란우산공제회 사업에 정부 예산을 끌어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중앙회 현안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자 직원들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일로 사람을 괴롭히기는 하지만 중소기업과 중앙회를 위해 열심히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 부장은 “아마도 이 무렵에 마음으로 그를 ‘김 부장’ 정도로 승진시킨 것 같다”고 했다.

2013년 12월 초 이 부장의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며칠간 집에도 못 갔다. 12월19일 예정된 대통령과의 간담회 준비 때문이었다. 당일 행사를 잘 마무리하고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이 부장은 아들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아빠 회사가 TV에 나왔네”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긴 그동안 이렇게 많은 사汰?중앙회를 찾아오고 중소기업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적이 없었지.” 중기중앙회와 중소기업인의 위상이 높아진 데는 김 회장의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중기중앙회 직원들은 김 회장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김 대리로 시작해 김 회장까지 승진한 8년간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지난 24일 김 회장의 마지막 공식행사인 60번째 경영전략회의 때 상영했다. 오는 28일 퇴임하는 김 회장에게 선사한 직원들의 선물이었다. 동영상이 상영되는 동안 김 회장은 눈물을 글썽였다. 일부 직원도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 간부들이 돈을 걷어 제작한 금으로 된 명함도 김 회장에게 선물했다. 명함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 가슴속에 영원한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동영상이 끝나자 김 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그는 “떠나는 것은 걱정이 안 되지만 여러분과 정을 떼는 게 더 걱정”이라는 말로 답사를 시작했다. 그는 “김 대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모 대기업 회장도 직원들이 ‘대리’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듣고 위안이 됐다”고 했다. 직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김 대리가 영원한 회장으로 승진해 퇴임할 수 있게 된 것은 여러분과 함께한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김 회장은 “마음에 상처를 줘 감정이 남아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릴 테니 이 자리에서 모두 털어 달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이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 회장은 감玲?미안함의 표시로 직원 429명 전원에게 시계를 선물했다. 행사가 끝난 뒤 만찬이 시작됐다. 김 회장은 수십개 테이블을 일일이 돌았다. 이들과 마지막 술잔을 부딪치는 것으로 그는 ‘대리에서 회장으로 승진’한 중기중앙회 생활 8년을 마무리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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